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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요병원에서의 1년을 돌아보며
신경과 과장 신기춘

고향집 어머님께 개 한 마리 키우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혹여 반려견이 홀로 계신 어머님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으리란 마음뿐 아니라 어린 시절 누렁이, 백구와의 추억이 한 보따리인 나로서는 여러 사정으로 서울 아파트에서 키우지 못한 아쉬움도 덜어보리라는 속셈도 있었다. 그런데 어머님의 대답은 뜻밖에 단호했다. 더 이상 짐승은 키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짐승이 있으면 매 끼니마다 밥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외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당신의 이유였는데 내가 그거야 옆집에 조금 부탁하면 되지 않느냐며 했더니 그제서야 속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이제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하고는 인연을 맺고 싶지 않구나. 대신에 마당에 있는 꽃을 가꾸고 철마다 피어 올라오는 이쁜 송이들 보면서 살란다“
“....”

당신이 먼저 떠나면 혼자 남는 반려견이 불쌍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본인 살아생전 또 다른 이별을 보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개를 키우자는 말을 그 이후론 다시는 하지 않았다. 가끔씩 고향집 마당의 만개한 꽃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면 무심한 듯 ‘멋지네요’ 또는 ‘최고네요’라는 상투적인 답장만 보낸다.

자연의 티끌로 돌아가든, 그분의 나라로 가든, 정토로 떠나든 스러져가는 모든 생명체의 짠함을 나는 느낀다. 하물며 사람이라면야....

다양한 인연을 맺고 살다가 여기에 오신 분들, 대기업 임원, 기업체 운영, 수려한 외모로 한때를 즐겼음을 자랑하는 어르신, 농부, 남대문 시장에서 희망을 일구었던 분... 이분들에게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들은 무서울 만큼 아프게 공평하다. 계요병원에서 인연을 맺은 그분들로 인해 신경과 의사의 무거움을 새삼 다시 느끼지만 그것이 일상인 것이 나의 일임을 알고 있으며 나라는 정체성은 그분들을 포함한 많은 관계 속에서 날마다 새로이 변해간다. 억겁의 시간 동안 명멸하였던 별들과, 존재하였던 모든 것들의 티끌의 흔적을 끌어앉고 만들어진 나, 그 관계 속의 모든 것들은 확장된 나이며 동시에 당신이다. 그들과 함께 가는 여정이 그리 힘겹거나 나쁘지 않게 느끼는 것은 필시 그동안의 인연과 세월 덕이리라.

계요병원에 처음 와서 눈에 들어온 넓은 병원 정원은 경영학자가 보기에는 그럴싸한 건물로 채우지 않은 것을 바보 같다고 할지 모르나 봄기운이 완연한 어느 날 푸릇한 잔디, 초여름의 생기를 머금은 꽃들, 가을이 물든 고엽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코로나 유행이 지나가고 어느 햇빛 따스한 날 병동의 어르신들이 흐드러진 꽃들 사이의 병원 정원의 벤치에 앉아 가족들이 가져온 음식들과 추억들로 세월의 짠함을 누그려뜨릴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